시를 새긴 돌

선과 먼지와 연필

봄과봄 2016. 8. 25. 00:11

 

 

선과 먼지와 연필

 

엎어진 선을 붙잡아 일으켰다

선은 일어나기 싫은 기색이었으나, 다행히

내 손을 뿌리치진 않았다

선의 얼굴이 부어 있었다

부어도 선이라고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선은 구겨진 팔다리를 털며, 자기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고 말했다

선의 해묵은 투덜거림에, 먼지가 풀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이 바로  그 때야, 선

선은 몸을 가늘고 길게

아주 가늘고 길게 늘여 먼지를 간지럽혔다

먼지에게서 달콤한 바람이 일었다

기침을 참으며 나는 연필을 들었다

선, 우리에겐 할 일이 있어

그게 뭐지? 선이 물었고, 다시 우리는 웃었고

먼지는 두 눈을 깜빡였고, 연필은 날카로워 졌고

연필 끝은 부서지며 말을 걸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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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시모임에서 발표한 습작이다.

마음에 닿는 한 단어, 한 문장을 적어오는 것이 과제였는데

내 최근 최대의 관심사인 '선'과 거기에서 파생된 '길어지다' 를 이용하여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 보았다.

미완의 느낌이라 언젠가는 더 이어서 써보고 싶다.

선의 츤츤+데레데레함과 먼지의 유연함, 그리고 연필의 부지런함이 만나서 여행하는 이야기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