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PD의 책 '침대와 책'에 수록되어 있는 글
'밉고 싫고 감정은 파도치고 삶은 휘청이는 날' 중 발터 벤야민의 말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오로지 그에게만 열렬히 빠져 있을 때는 거의 모든 책 속에서 그의 초상을 발견하게 되는 경험을. 그렇다. 그는 주연인 동시에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온갖 이야기 속에서 장단편 관계없이 다양한 소설 속에서.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의 상상력은 무한히 작은 것 속에서 해답을 구할 수 있는 능력, 즉 내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모든 것 속에서 새로운, 압축된 충만함을 담을 수 있는 어떤 외연적인 것을 찾아내는 재능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펼쳐졌을 때야 비로소 숨을 쉬고 새로 넓은 공간을 확보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모습을 안쪽에서 활짝 펼쳐 보이는 부채의 그림처럼 받아들이는 재능이라고 말이다.
...
그는 지금 이 순간에 진행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이 저 먼 미래를 예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결정적이라고 말해준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전조, 예감, 신호들을 해석할 것이냐 이용할 것이냐의 문제만 남는데 발터 벤야민은 비겁과 태만은 (전조를 ) 해석하는 것을 권하고 냉정과 자유는 (전조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체없이 '이용'해야 한다. 그는 또 미래에 대해 막연히 불길한 느낌을 충실한 '지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땅에 오르다가 쓰러질 뻔하자 양팔을 크게 벌리고 '나는 너를 품에 안는다. 아프리카여!'라고 승리의 암호를 외쳤다. '카이사르는 배에서 상륙하려다가 바다 속으로 떨어졌을 때 조차 이 사고를 길조로 바꿨다.
"나는 너를 품에 안는다. 아프리카여!" 라고 외치며.
그 둘은 재앙의 전조, 불운의 표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몸으로 순간과 결합시켜 자신을 신체의 막일꾼으로 만들어서 위대해졌다고 벤야민은 찬양한다. 그러니까 내가지금 한 일은 몸으로 불운의 표징을 바꿔버리는 것이란 말이다. '오라 불운한 순간이여. 나는 너를 품에 안는다! 너를 열렬히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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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전조를 통해 읽었던 크고 작은 불행과 불운, 불안을 일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 말해주는 글이다.
한 달 넘게 담아두고 있다가 블로그에 옮긴다.
왜 슬픈(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라는 말은 사실 비겁과 태만의 합작에서 발현하는 것을 수도 있다는 것.
꿈과 상황을 해석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는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과 반성을 주는 글이었다.
해석하는 것이 비록 내 자신에게 행하는 것일지라도 오만한 태도이며 폭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는 좀 더 부지런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석에서 멈추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그 너머의 영역으로 뚫고 나갈 것!
막연히 불길한 느낌을 충실한 지금으로 전환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해본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너무 쉽게 판단에만 그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서 살면서 판단의 시선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진심을 열어보일 수 있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만큼은 이러한 폭력을 가하지 말아야겠다. 때로는 삶에 지쳐 이마저도 놓쳐버릴 순간이 있을 때, 자기합리화 대신 정말 미안한 감정이라도 가지고 미안함을 만회하기 위한 행동이라도 겹쳐가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퍽퍽한 세상을 더 퍽퍽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지는 않다. 내 친구들에게 해석 이상의 영역으로 함께 가자고 말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이라는 것은 체화의 기본 단계이고, 그래서 참 중요한 것 같다. 발화하는 말이란 것은 행동으로 가기 전에도 분명한 육체성을 가진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빠져나와 의지를 심어줄 수 있는 말을 고민하는 단계까지의 거리는 사실 머리와 가슴의 거리만큼이나 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리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요즘 부쩍 내 자신이 부덕하다고 느껴 덕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해답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약함에서 벗어나 불운한 순간까지도 포용하는 용기를 가져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덕도 조금씩 적립되어 언젠가는 복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발터 벤야민의 말, 코어 기억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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