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선의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을 샀다.
시집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상실의 터널에서 마악 빠져나와 의식이 희미한 한 남자가
처음 눈부신 흰 빛을 맞았을 때 쏟아내는
(정확히 말하자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창백하고 신실한 언어들의 일광욕
같다
시간을 쌓는다는 것,
기억을 감아올린 다는 것,
덧없고 덧없다
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말문을 막히게 했던 순간이란
영원하고 영원하다
고 역설한다
기억은 순간의 조합이고
순간은 망상과 인상이 겹쳐서 그려지는 한 장의 사진이고.
감정이란 언제든지 저장이 가능하다
재를 보고서
불길이 스쳤던 피부를 쓸어내리는 자는 없다
아주 약간의 온기와 망상만으로
그날은 재생되는 것
무의식의 코끼리는 묵묵히 모든 말과 정지화면들을 씹어삼키고
되새김질하고 배설한다
이별의 쓸쓸함에 저항하던 육체는 저물지만
의식의 아래에서 쏘아 올리는 코끼리똥은 흩어지지 않고
원래부터 있었던 곳, 바로 그 자리로 낙하한다
저무는 인생을 노려볼 힘조차 사라져 서글픈 침대에 몸을 던질 때
코끼리똥은 여전히
떨어진다 위로
Cowboy Junkies의 Isn't it a pity
무게가 느껴지는 아코디언 소리에 호소력 짙은 저음의 보컬이 공기 중에 고리처럼 맺어져 편안한 파동을 그려준다.
Margo의 근사한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부엉씨는 카우보이 정키스가 가스펠같다고 투덜대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음악을 한다고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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