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실언의 셋리스트는 왜 늘 같을까.
백해무익한 체념과 걱정 따윈 이젠 좀 끊어버리고 싶은데.
그것들 참. 머리 위를 떠다녀. 구름처럼-
이런 나를 넌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거야.(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 그럴 수도 없겠지만.)
열정적이고 막 솔직하고 충직하고 그런 거
나한텐 너무 어렵다.
열기가 지워진 이 계절은 적막하고도 적막해서. 지난 일요일엔 집에서 멀리 떨어진 호숫가에 가려고 했었어. 둥그런 물가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적막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아침이면 냉정을 집어삼켜. 이유없이 울고 싶은 날이면 더욱더 차갑게 마음이 식었으면 하고 기도하지.
비가 이젠 그만 왔으면 좋겠어. 기분 좋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좀 지친다. 난 기분의 노예가 아닌데.
감정에 충실히 살다간 매일매일 쇼팽의 발라드 같은 것들이 회로 속에서 수도 없이 펑펑 터질 것 같아.
그래도
에이미,
나도 너처럼 낭만에 쉽게 빠져드는 점만큼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낭만이란 때론 나쁘지. 그렇지만 낭만 속에는 그려오던 꿈이 있으니... 빠져들 수 밖에.
오늘의 실언은 그만 잊을래.
차라리 기억의 수레바퀴 아래로 몸을 숨기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