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굴레만큼이나 사람들을 지배하는  패턴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는 방식이나  행동하게 되는 방식은 이성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전혀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충동적으로 저질러버린다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사실 알고보면 이미 정형화되어 있는 몇 가지의 선택사항 중에서 자신의 기질이 시키는 대로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인 듯 하다. 간단히 말해 패턴이라 할 수 있는. 패턴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은희경과 소피 칼을 통해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은희경의 소설 '태연한 인생'의 주인공 김요셉은 별 볼일 없는 현실에서 냉소적인 태도를 일관하며 살아가지만 그의 내면에는 옛 연인 류에 대한 꺼지지 않는 열정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류가 갑작스럽게 떠나면서 큰 고통을 겪었고, 이후에는 계속 건조하고 삐딱하게 살아가지만 류의 소식을 우연히 접하면서 그녀를 만나고 싶다라는 열망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휩싸여 혼란을 겪는다.  매사 느긋하고 이기적인 겉보기와는 다르게 그의 속은 불이 붙기만을 기다리는 폭탄의 심지처럼 초조하고 불안하다. 냉정한 그가 한 순간 냉정을 버리고 이성을 잃게 되리라는 패턴.

남자친구의 이별통보를 소재로 한 소피 칼의 현대미술 작품 '잘 지내기를 바래요'에서는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류의 전형적인 텍스트(편지)가 나온다. 소피칼은 이 편지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107명의 다양한 직업의 여성들에게 해석을 부탁하고 결과물을 관객에게 공개했다고 한다. 이것이 그녀가 이별을 견뎌내고 잘 지내는 방법이었다고. 이 우회적이고 조심스럽기만한 남자친구의  표현 속에 숨겨진 것은 너와 만나는 것이 지긋지긋하니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내용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심한 사람들이 누군가와 좋게 헤어지고 싶을 때 이렇게 행동한다만, 아무리 우아한 손수건에 칼을 싸서 건낸다 한들 칼은 그냥 칼. 받은 사람은 시퍼런 칼날에 베이지 않을 수 없다. 원문보다 더 암호같은 107개의 해석에서도 쉽게 압축할 수 있는 패턴.

이런 극적인 상황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사람들은 패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패턴에서 벗어나면 고립될(무엇으로 부터?) 것이라 생각해 쉽게 패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도...

패턴이 영혼을 잠식하는 동안 나는 뭐하고 있었나?

정처없이 흘러가는 태연한 인생 속에서 나는 오늘도 불안을 불태워가며 무언가를 써댄다. 현실은 너무 초조한데 아웃 오브 현실에 대해 생각하고 쓸 때만큼은 초조함이 달아나니 아니 쓸 수도 없다. 나 자신에게 걸어놓은 수많은 계획과 약속들이란 패턴의 너머에 있는 걸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한 숨 돌리자. 즐기는 것 만이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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